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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ㅣ"사제지간 짓밟은 국가폭력 두 번 다시 없어야"

MBC충북 뉴스 | 2021.09.06 08:26 | 조회 1626 | 좋아요좋아요 144
30년 넘는 세월 동안 북침설 교육 조작 사건에 휘말려 '빨갱이 교사'라는 낙인을 품에 안고 살아온 강성호 교사.

그러나 강 교사는 무죄 판결을 받은 직후 학생들에 대한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북침설을 조작한 당사자들은 학생들에게 사과해야한다고 소신을 밝혔습니다.

당시 평범한 교사를 꿈꾸던 그가 어쩌다 제자들의 거짓 증언에 맞서야 하는 신세가 됐을까요?

강성호 교사를 만나 시대적 비극이 된 그 사연을 이채연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1989년 5월, 제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평소처럼 일본어 수업을 하던 초임 교사 강성호 씨는 영문도 모른 채 경찰서로 끌려갔습니다.

죄목은 국가보안법 위반.

'6.25는 미군의 북침으로 일어났다', '북한은 생각만큼 나쁜 곳이 아니다'라며 의식화 교육을 했단 이유였습니다.

◀INT▶강성호 교사
"후지산 사진과 백두산 사진 같이 보여주면서 어느 쪽이 더 아름답냐 더 높냐, 그 수업이 한 달이나 지난 후에 갑자기 북침설 교육으로 둔갑돼서.."

전교조 결성을 탄압하려 교사들을 감시하던 분위기 속에 강성호 교사는 결국 수감됐고,

법정에선 교실에서 만났던 제자들의 거짓 증언에 맞서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INT▶강성호 교사
"잊히지가 않죠. 왜냐면 하루아침에 제가 교사에서 간첩이 된 거 아니겠습니까. 제 손엔 분필 묻은 흔적이 그대로 있는데.."

북한 찬양 교육을 들었다며 수사기관에 진술했던 제자 6명 중 2명이 당일 학교에 결석했던 사실이 드러났지만, 법원은 강 교사의 호소에 귀를 닫았습니다.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 유죄 판결로 교단을 떠나 10년 뒤에야 학교 품으로 돌아왔지만, 북침설 교사라는 멍에는 쉽게 벗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 재심이 받아들여져 명예 회복의 길이 열렸지만 20대의 청년 교사는 어느새 정년을 앞둔 50대가 됐습니다.

◀INT▶강성호 교사
"포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제자와 스승을 이렇게 국가보안법이란 잣대로 이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준, 이 현실은 반드시 바꿔야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가 진실을 밝혀야되겠다."

강성호 교사에게 지워진 멍에와 책임은 군부 독재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면 한 개인의 인격과 양심, 교권이 희생될 수 있다고 여겨졌던 암흑의 시대가 낳은 비극이었습니다.
MBC NEWS 이채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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