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규호의 특급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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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잡히는 법률

미투운동했더니.. 명예훼손 혐의로 조사?

특급작전 | 2018.03.05 13:21 | 조회 2526


 

** 문화계, 학계, 종교계 할 것 없이 미투운동이 확산되고 있는데, 성추행 의혹이 제기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대응하던가. 아니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던가. 크게 두 가지로 나뉘고 있죠. 성추행 당한 것도 억울한데, 미투운동을 했다고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당하면 참 힘들겠어요. 정말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나요.

 

. 안타깝지요. 가해자의 신분을 특정할 수 있도록 성추행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리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실 수 있어요.

 

형법 제307(명예훼손) 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처벌하고 있고,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의 경우에는 같은 조 제2항은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해서 사실적시보다 더욱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인터넷 등에 게재하면 특별법(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에 의해 가중될 수도 있구요.

 

특정인으로부터 성추행 당한 사실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면, 그 내용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할 가능성이 있어요. 미투운동이 대부분 오래 시간이 지난 후에 용기를 내어 참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과거의 성추행(성범죄)이 있었던 사실을 명확히 밝힐 수 없는 경우가 많고, 그렇다면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가능성도 다소 높아요. 지금 언론에 공개되는 미투사례들도 가만 보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사건들이고, 최근에서야 간신히 용기를 내어 피해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자칫 가해행위(성범죄)에 관한 공소시효는 도과되어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불가능한 반면, 뒤늦게 피해사실을 밝힌 피해자만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어요.

 

** 미투운동이 더 이상 추가적인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는 고질적인 문제인 성추행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행되고, 결국은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선한 목적에서 미투운동에 동참하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상식적으로 이런 분들을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 그래서 이런 억울한 일이 생기지 말라는 취지에서 우리 형법 제310(위법성의 조각)는 제307조제1(사실적시 명예훼손)에 관해서 해당 내용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 형법은 미투운동처럼 사실이면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진행한 경우에는 명예훼손으로 처벌하지 않는 규정을 두고 억울한 명예훼손이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투운동은 단순히 누군가를 비난하겠다는 취지가 아니라 더 이상 성범죄가 암묵적으로 용인되어서는 안된다는 취지, 즉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어서 처벌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요.

 

** 그런데 좀 전에는 미투운동을 하면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래도 일단 다행이네요. 미투운동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것에는 사회전체가 뭐 큰 이견이 없을테니까요. 명예훼손을 많이 우려하지는 않아도 되겠네요.

 

~ 규정대로라면 미투운동을 하시는 분들은 당연히 형법 제310조를 적용받아 처벌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무적으로, 즉 현실적인 측면에서 보면.. 성추행사실을 인터넷 등에 알린 경우 미투운동이라는 거시적인 측면에서 당연히 공공의 이익으로 판단되어 면책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를 특정해서 성추행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린 명예훼손사건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요. , 어떤 피해자가 아무리 좋은 목적,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가해자의 신분을 대외적으로 특정해서 알렸다고 하더라도 미투운동이라서 당연히 면책되는 것은 아니고, ‘당사자를 특정했는지, 불특정 다수에게 알렸는지, 사실인지여부를 판단하고, 그 다음에 공공의 이익이 있는지를 별도로 판단하기 때문에 일단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면 수사과정에서 심리적으로 힘들어져요. 그래서 저는 또 다른 제2, 3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밝히는 분들이 명예훼손의 문제로 추가적인 고통을 받을까 너무 염려스러워요.

 

** 실제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유명인들이 곧바로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는 경우는 많지는 않잖아요.

 

. 언론노출되는 미투사례의 경우, 해당 내용이 집중 보도되고, 더 나아가 가해자의 처신에 사회전체가 정말 관심 있게 살피고 있기 때문에, 섣부르게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경우 더 많은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명예훼손으로 고소자체를 안하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언론에 노출되는 사건보다 언론에 노출되지 않는 사건의 수가 더 많지요.

 

그래서 지금부터는 언론에 노출되지 않아 대중의 관심어린 도움을 받지 못하는 피해여성들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지 함께 고민해봐야할 듯해요.

 

** 미투에 참여한 사람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것 자체로 심정적으로는 가해자는 더 비난받아야 할 듯한데요.

 

예전에 어떤 엄마가 자녀가 어린이집에서 학대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자신이 목격한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어린이집 원장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어요. 수사기관은 엄마가 묘사한 내용 중에 세부적으로 사실과 약간 상이한 내용이 있다고 아이 엄마를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기소했구요. 이 아이 엄마가 수사시작시점부터 1심 무죄판결을 받을 때까지 약 16개월이 걸렸어요. 게다가 검찰이 1심 무죄판결에 불복해서 항소하는 바람에 실제 끝나는 것은 거의 2년이 넘게 걸렸지요. 이처럼 누가 봐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실을 밝힌 경우도 고소당하고, 수사받고, 검찰에 의해 기소되고, 오랜 재판을 받을 수 있어요.

 

미투 역시 가해자가 나는 그런적 없다며 피해자를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오히려 고소하는 경우, 특히 해당 사건이 오랜 시간 전에 발생한 일이라 성추행 사실을 전혀 밝혀줄 증거가 없는 상황이라면 피해여성은 자신이 밝힌 내용이 사실이며,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라는 것을 밝혀 명예훼손 무죄판결을 받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이 과정에서 피해여성은 또 다른 심적 고통을 겪게 될 수도 있어요.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피해여성이 미투하였으니, 또 한번 고소당하는 고통도 그냥 감내하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침묵하자니 피해자가 계속 생길듯하고, 말하자니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가능성이 있고. 답답하네요.

 

사실 법조계에서 오래전부터 진실을 말한 죄인 사실적시명예훼손의 폐지를 논의해왔어요. 개인의 명예감정도 중요하지만 진실을 말한 것으로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취지이지요. 미투 뿐만 아니라 앞서 말씀드린 아동학대 피해아동의 부모가 명예훼손으로 형사재판을 받기도 하는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관한 관계법령을 좀 고쳐야 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또 강간의 경우에는 수사초기부터 수사 매뉴얼이 잘 정착되어 피해여성 입장을 많이 배려하고 있는 추세지만, 반대로 가해자의 명예훼손 고소가 있는 경우 수사기관에서 피해여성이 인터넷에 적시한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누가 봤냐’, ‘증거 있냐’, ‘본 사람 진술서를 받아와봐라라는 식으로 조사하는데, 이런 식의 수사는 좀 자제되었으면 해요.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피해여성이 기관 내 강자를 대상으로 하는 목격자의 진술서 확보하거나 증거를 채집하기는 정말 힘들거든요.

 

마지막으로 많은 여성들이 직장 및 집단의 암묵적인 방조하에 성희롱 성추행 피해에 노출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성희롱 성추행 피해신고가 접수되면 우선 피해자 중심으로 신속한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된 선언적 의미의 현행법령을 좀 개정해서, 관리자의 책임을 좀 더 강화해야하지 않나 생각해봐요.

 

저는 지금 많은 분들의 용기로 이루어지고 있는 미투운동이 유명인 누가 이런 짓을 했다더라. 나쁜 놈이런 식의 단순한 비난으로 끝나지 않고, 정말 힘이 없어서 피해를 입고도 표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직장 내에서 계속 고통을 겪고 있으신 여성분들이 당당히 언제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논의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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