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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인터뷰] '제2 윤이상' 아닌 '제1 박영희' 작곡가

MBC충북 뉴스 | 2021.11.23 15:31 | 조회 1814 | 좋아요좋아요 127
◀ANC▶
청주 출신의 세계적 작곡가 박영희 씨가
최양업 신부의 이웃 사랑을 다룬
오페라 '길 위의 천국'으로 돌아왔다는 소식
전해드렸는데요.

동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최초로
베를린 예술대상을 받는 등
수많은 '최초' 수식어를 갖고 있는
세계적 작곡가 박영희 선생,
집중인터뷰에서 만나봤습니다.

◀END▶
◀VCR▶

"저는 제2의 윤이상이 아니예요. 제1의 박영희입니다. 그 말씀은 꼭 드리고 싶은데, 한국 사람들은 제2의 윤이상이라고 그래야지 빨리 알아차려주시잖아요."

(오페라 인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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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안(破顔):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여 활짝 웃음
파안(琶案): '책상에 놓인 비파'

"작곡가 박-파안 영희(Younghi Pagh-Paa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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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음악을 듣고 음악회장을 나가실 때
청중들이 웃음을 띤 얼굴을 하고 나가셨으면 저는 작곡가로 그 순간에는 행복하고 성공했다는 의미에서 그런 작곡가가 되고 싶다는 뜻을 담았어요. 이름에 '깨질 파' 자가 들어가면 안 좋아요. 근데 제가 한문 실력이 많이 없으니깐 김용옥 도올 선생님께 여쭤봤죠. '비파 파' 자에다가 '책상 안' 자, '생각할 안' 자를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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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최초' 수식어
원동력은 내고향 청주
그리고... 그리움
곡명도 대부분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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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음악 인생에서 어떤 원동력이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세요?)

"청주 시내 한복판이 저희들의 놀이터였었어요. 그러면 어떻게 놀이한 일이 어떤 사람의 원동력이 되느냐 질문을 하실 경우에 그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은 잊혀지지가 않아요. 그만큼 행복하고, 그 남문로 1가, 서문동 북문로 1가, 2가 그 모든 사람들이 저희 보호자도 되고 친구도 되고 그랬어요. 그래서 저는 청주를 잊어버리지 않고 제가 청주에서 커서 그 모든 것을 겪지 않았더라면 지금 현재 제가 없어요.

"그리움이 없으면 꿈을 꿀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 그리움이 또 왜 생기냐하면 직접 만나볼 수가 없는 거예요. 돌아가신 분들을 그러니까 항상 그리움 속에서 사는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청주 고향을 그렇게 좋아하는지도 몰라요. 제가 어렸을 때 그리고 지금 현재도 그 기억 속에 있는 사람들을 그리운 사람들을 항상 잊지 않고 제 가슴에 담고 살고 있기 때문에 그분들이 계속 살아있는 거예요. 그러면 왜 그렇게 그리워하냐 하면 제가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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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에는 판소리도, 해금 소리도 함께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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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앞에 해금, 그 당시에는 '깽깽이'라고 그랬었는데 해금을 하시는 분이 계속 우리집 앞에서 해금을 연주하셨어요. 그분들이 국악의 끈을 이어간 분들이에요. (한국)전쟁 끝나고 장사를 해야 되겠다. 이런 것이 아니라 자기 악기 하나를 가지고 길에서 연명을 하신 분들이요. 지금으로 따지면 그 옛날 그분들은 전부 보석 같은 존재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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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학 전환점,
그러나 국악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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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아무리 좋은 풍토에서 자라났다 하더라도 더 배우고 싶은 욕망이 더 컸기 때문에 그래요./나도 한번 시험해보자, 내가 어느만큼의 클 수 있는 역량이 있는 것인가가 첫째 목표였어요./독일 정부장학금 응모가 있었어요. 거기 응모해서 시험을 보고 작품도 내고 그래서 거기에서 합격이 된 거예요./ 내가 왜 여기 이 땅에 있는지 이 독일 땅에서 있는지를 상기시키면서 있는 힘을 다해서 공부를 했어요."

가야금을 황병기 그 선생님께 잠깐 배웠었는데그 한 음을 뜯으면서 생각하는 게 너무 좋아서요. '다음에는 안 배우고 싶습니다. 음 하나를 뜯으면서 생각하는데 너무 심취해서 행복하기 때문에 여러가지를 안 배워도 한 음만 생각하는데 이미 충분히 행복합니다' 했더니 '그러면 자네는 앞으로 안 와도 되네'라고 하셨어요. (그분이) '영희야 너는 한국에 앉아서 세계로 악보를 파는 사람이 되라'고, 남의 거를 쫓아서 거기로 따라가지 말고 자기 거를, 배워서 내가 누구인지 알라는 말씀이나 마찬가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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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속에서 작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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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서 생각을 해서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게 이 악보를 쓰는 일이죠. 물질적인 그 피아노에서만 의존하면 환상을 할 시간이 없어요. 음악을 머릿속으로 생각을 해서 혼자 갖고 있을 때가 작곡가로서는 가장 행복한 때예요. 내 맘대로 어디든지 막 날려보낼 수가 있거든요. 음악이 개체로 생명이 있어요. 내가 이렇게 쓰겠다고 써지는 게 아니라 음악 자체가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 나한테 주문을 할 수도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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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박영희작곡상은 국악기 필수 포함해야
- 사비로 만든 '파안 생명나무 작곡가상'

"내가 한국의 작곡가를 후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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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는 영혼에 관한 예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시간을 줘야지 돼요. 가장 중요한 거는 작곡을 하는 젊은이들에게 많은 눈길을 보내주셔야지 우리나라가 전체적인 문화 음악 문화가 올라갔다는 그런 느낌을 주지, 서양 음악 다른 나라의 다른 문화권에 있는 음악을 아무리 연주를 해석을 다르게 한다 하더라도 그거는 우리의 정서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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